악수(握手) Handshaking_개인展

이 태 호 (미술비평/경희대 객원교수)

악수(握手)???? 인사, 감사, 친애, 화해 따위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두 사람이 각자 한 손을 마주 내어 잡는 일. 보통 오른손을 내밀어 잡는다. (예)악수를 나누다/악수를 청하다/두 사람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한글컴퓨터사전에서 발췌-


1. 조윤환의 최근 작업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그리고 한 개인이 사회와 만나면서 형성되는 ‘관계’에 집중돼 있다. 그는 그 ‘관계’를 사람들이 손을 맞잡는 ‘악수’의 형상을 통해 표현한다. ‘악수’는 오늘날 광범위한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관습으로, 사람이 만날 때와 헤어질 때, 흔히 그 관계를 확인하거나 표현하는 한 수단이다. 그의 작업에 되풀이 등장하는 지퍼나 단추, 끈들도 결국은 ‘악수’를 위한 손의 형상과 연결된다.

욕심쟁이 _ 1550 x 900 x 750mm _ F.R.P(Pastel coloring) _ 2007


휴식 (일과끝) _ 1080 x 640 x 1320mm _ F.R.P _ 2007


‘악수’는 본래 엥글로 색슨계의 풍습이었으나 그것이 퍼져 오늘날에는 전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악수’는 손에 칼과 방패를 들고 다니던 시대의 유물인 셈이다. 원칙적으로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는 이유도 공격무기를 들고 있지 않음을 상대에게 알리고, 서로 확인하고자 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Endless relation _ 2700 x 530 x 530mm _ F.R.P _ 2007


오늘날에도 ‘악수’는 일차적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선의를 알리고, 경계심을 늦추며, 함께 감정을 나누면서,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희망과 기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악수’라 하는 육체적 행위가 상대방과의 심리적인 소통과 공감을 언제나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악수’는 칼과 방패의 시대 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적/사회적 복선이 깔린 행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악수라는 관습을 이행하면서도 맞잡은 손 사이로 ‘소통’이 아니라 ‘소외’를 경험하는 일, 심지어는 적의와 증오심을 교환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을 것이다. ‘악수’가 합의나 공감이라는 일차원적 의미를 넘어 이 사회의 여러 현상만큼이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의미를 띄고 있는 것이다.


Open-minded _ 2200 x 1460 x 700mm _ F.R.P _ 2007


또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소통’의 부재를 느끼는 관계는 오히려 막연하게나마 소통을 믿었던 관계, 즉 악수를 나눈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악수를 나누지 않은 관계에서는 ‘소통의 부재’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이별(소외)’은 ‘만남(소통)’이 있은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No title _ 650 x 590 x 300mm _ Bronze _ 2007


어쨌든 ‘악수’는 이제 단 몇 개의 단어로 표현되는 단순한 의미만을 담고 있지 않다. 그것은 중세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진 단어와 언어의 의미만큼이나 복잡해졌다. 이제 ‘악수’를 단지 ‘환영’과 ‘공감’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졌고, 그래서 옛 시대의 진정이나 의미는 사라졌거나 변질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서 ‘소통’과 동시에 ‘소외’를 느끼며, ‘화해’와 함께 ‘불화’와 ‘오해’의 가능성을 예감하기도 하는 것이다.


잘못된 만남 _ 450 x 170 x 250mm _ Bronze _ 2005


그렇기 때문일까. 오늘날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악수를 바란다. 진정한 ‘만남’과 ‘공감’과 ‘소통’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욕망과 갈등이 조윤환작가가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일 것이다.


화합 _ 400 x 125 x 125mm _ F.R.P, Aluminum _ 2005


2. 나는 이 글을 전적으로 조윤환작가에 대한 사적(私的) 호의에서 쓰고 있다. 그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작업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흙과 나무와 철 등 갖가지 재료를 넘나들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의 그런 열정과 재능은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근대 이후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체재가 만든 작가상을 뛰어넘어, 어쩌면 우리가 “예술가”라고 일컬을 때 의례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고전적인 예술가상’을 떠올리게 한다. 때로 그러한 작가의 모습이 나를 감동시킨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불안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넘쳐나는 정보의 세상에서 한 작품이 작가의 재능과 열정만으로 주위를 두루 감동시키고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의문은 비단 조윤환작가의 경우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어서 많은 젊은 작가들을 생각하며 던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이란 무조건적인 열정과 재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조윤환작가의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기보다는, 그의 한 선배로서, 조언을 하는 게 어떨까 한다. 즉 다소 상식적이고 추상적이지만, 나는 작가에게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부터 2007년 오늘까지의 국내외 미술사를 면밀히 살피는 일과, 당대의 인문학적 연구와 성과를 폭넓게 이해하려는 노력을 권하고 싶다. 그와 같은 미술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와 개념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 진부함을 떨치고 생생한 감동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이 작가의 경우, 조소예술을 함에 있어 기본적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물질에 대한 이해와 친숙함’은 이미 한 경지에 있다고 장담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힘내! _ 660 x 240 x 140mm _ Bronze _ 2007


미술이 전통적으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취해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것은 미술이 ‘시대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시대는 언제나 그 시대만의 체험과 감성을 지니게 마련이므로 거기에 ‘정신’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악수’에 대한 후기산업사회의 체험과 감수성이 근대가 출발하던 시기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창과 칼의 시대와는 공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그것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는, 이미지가 실제를 압도하는, 자연 이전에 인공물을 체험하는 이 시대에 예술은 또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약속 _ 500 x 290 x 110mm _ Bronze _ 2007


그러한 고민을 나는 작가의 <자소상>에서 본다.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벌리고 있는 인물은 몸체가 없다. 몸체가 없는 얼굴과 수족의 허망한 몸짓과는 달리, <주름관>의 악수하는 손은 오직 연결로서의 기능으로 일관하고 있다.


비익조(比翼鳥) _ 520 x 460 x 200mm _ Bronze _ 2007


옷에 있는 지퍼의 작은 단위들이 서로 맞잡으려는 손들로 보였다.”는 작가의 말은 진정한 관계를 열망하는 작가의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작가의 섬세한 관찰과 결합된 ‘시대정신’, 그리고 거기에 물질과 공간에 대한 작가의 주도적인 능력이 결합하여 앞으로는 보다 더 자신만의 신선한 창조적 작품이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시에 나온 작품뿐만 아니라, 이처럼 앞으로 전개될 작가의 작업을 상상하며 나는 조윤환작가의 첫 전시를 즐기고자 한다.


원인과 결과 _ 1280 x 680 x 700mm _ F.R.P _ 2007